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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 존 스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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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 (존 스토트)

 

(사진: John Stott / 출처: Wikipedia)


매번 묵상 가운데 개인의 무지와 부족한 이해를 꺠닫게 해주심이 감사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나는 그동안 하나님의 사랑, 부활하신 주님, 속죄함얻은 우리, 자유케된 우리 등에만 더욱 시선을 두며 십자가 사건에 대한 비균형적 이해를 계속 도모해왔던 것 같다. 아마도 책에서 말하듯 이러한 ‘화해‘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장 인격적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책에서도 자주 이야기 하듯이 우리 자신과 우리 안의 죄의 심각성에 대해서 부터 먼저 깊이 깨닫고 인정하며 생각해보는 것이 십자가 사건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균형을 이루며 우리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양자됨과 받아들여짐의 의미와 기쁨을 더욱 깊게 누릴 수 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탕자가 자기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 돌아와야 했었던 것 처럼, 나에게도 화해의 기쁨 이전에 먼저 회개의 겸손함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나는 죄의 심각성에 대해 얼마나 많이 생각해 보았을까. 내가 죄인인 것에 반항하고, 내 안에 내가 주인이 되려 했었던 것 그리고 내 안에 알게 모르게 여전히 활동하는 죄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런 나, 우리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어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피흘려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대속하신 일, 우리 때문에,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께서 함께 이루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기억해 보면서, 동시에 이제 나는 주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시 계속 고민하게 된다.

나는 때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때 마다 돕는 은혜로 함께 해주셨던 은혜들을 떠올리며 나의 신앙생활에 때마다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지펴가기를 반복해왔던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은혜’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는, ‘과연 어디까지가 은혜로 생각되어야 할까’ 고민한 적도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책을 읽고 묵상해가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지금 내 삶 자체가 은혜라는 것을 다시 곧 깨달아 생각할 수 있었다. 무엇이 은혜이고 아닌지는, 무엇이 감사이고 아닌지 저울질 하듯 하는 나의 태도는 분명히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왜 그토록 신앙의 선배들이 십자가 앞에서 눈물로 고뇌하며 기쁨으로 흠모하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여전히 부족함 많은 종 이지만, 마귀의 유혹 속에서도 순종의 길을 걸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이제는 더욱 묵직하고 심오하게 각오를 다져야하지 않을까. 성경에서는 때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할 때 받게될 부당한 고난들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하는데,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베드로전서 2:18-23)을 자주 묵상함으로 온전히 인내를 이루고자 노력해야겠다. 부족한 개인이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6:24) 하신 말씀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6:25) 말씀도 믿고 선포하기를 힘써야겠다. 마지막으로, 책에 쓰여진 내용 처럼 주님을 만나 뵐 그 날까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께서 허락하신 공동체와 함께 서로 사랑하며, 열심히 세상에 봉사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목적이 완성되도록 더 힘있게 힘써야겠음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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